독수리 유격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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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PARK, YOUNG SIK (박영식)
· 작성자 독수리유격대  
· 글정보 Hit : 3650 , Vote : 619 , Date : 2005/09/18 02:51:55 , (6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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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명 : PARK, YOUNG  SIK   (박  영  식)
현 주 소 : 13884 EUCLID AVE. #B-5 GARDEN GROVE, CA92643 (WESTMINSTER ARMS APTS) U. S. A.
당시직위 : 보병 제32연대 3대대 정보장교, 보병 제32연대 정보주임 보좌관


(본 증언은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박영식(예비역 육군대위)씨가 독수리유격대에 대한 조사를 담당했던 국방부 조사대 담당조사관(박재운 사무관)과 유족(최면택)에게 서면으로 우송한 내용이다)

국방부 조사대 박재운 조사관 귀하

귀하께서 발송하신 89년 4월 21일자 공문을 며칠 전(본인의 주소가 변경되어 여러 곳을 거처 배달되었음) 득견하고 이제야 회신을 하게 되어 죄송합니다.

즐거웠던 지난날의 추억을 더듬는다는 것은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나 괴로웠고 악몽 같았던 회상은 인간에게 미간을 찌푸리게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귀하께서 간곡히 당부하셨으며 또한 요즈음 보기 드문 효성이 지극한 유가족의 열화 같은 집념을 감안 할 때 그대로 묵살 한다는 것이 도리가 아니 여서 또다시 괴로운 기억을 더듬어 가며 회신에 임하고자 합니다.

단, 본 사건이 근 40년의 세월이 흐르고 본인도 육순을 훨씬 넘고 보니 아련히 떠오르는 그 당시를 정확히 술회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나 혼신의 기력을 경주하여 가급적 확실을 기하고자 진력 하겠습니다.

질문 사항

1.-가,나,다,
유격대원의 인솔은 그 시기(년월일)는 불확실하며 장소는 포천이었다고 기억하며 당시 대대장 김영필 소령으로부터 수령하였음.
대대장의 명령 내용은 17연대 1대대장 휘하에 있는 유격대원이 “현역군인을 능가하게 활약하는데 비해 제반 군 장비 및 보급품이 현역과 현저히 차가 나는 대우를 받고 있어” 타 부대로 이동 하였으면 하고 전전긍긍 하고 있든 차 그네들하고 긴밀히 약속되어 있으니 은밀히 그네들을 인솔해 오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었음.

2.-가,
유격대원 이동수단은 전후 보상책의 일환으로 일본국으로부터 미군에게 납품한 일본제 トヨタTRUCK(도요다 트럭) 2대임.

2.-나,
상술한 바와 같이 유격대원의 이동지점은 불확실 하나 포천에서 대대본부라고 기억됨.

2.-다,
유격대 간부등과의 사전 의사타진은 본인이 타진할 필요성이 없었음.
왜냐하면 이미 대대장 김 소령과 사전에 협의가 이루어 젖다 기에 말임.

2.-라,
유격대장 “고 최종성”이 이동사실을 전연 몰랐었다면 그렇게 쉽게 이동에 응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음.

3.-가,
이동당시 대원들은 사전에 연락을 받았음으로 본인이 그들에게(집결지) 도착 하였을 때는 이미 이동준비가 완료상태에 있었음.

3.-나,
17연대 1대대 간부들과 합의 하였는지는 본인은 알 수 없었음.

4.-가,
당대에 도착한 후 그네들의 임무는 현역 수색대원을 측면에서 지원수색에 임하였다고 기억함.

4.-나,
대대장 김영필 소령 지휘 하에 있었음.

5.-가,나,
본 사항에 대하여는 본인은 전연 모르고 있었음. 그 당시 본인은 명령에 의하여 정보학교(육군 7훈련소 대구소재)에 입교(1-9-1951 → 10-20-1951 이 일자는 본인의 비망록에 있음)중이었음.

6.-가,
본인이 정보학교를 수료 후 원대복귀 하였을 때 누구라고는 기억되지 않았으나 유격대 간부 등이 총살되었다고 들었음.

6.-가,나,
모름.

7.-가,
유격대원 임무는 상술한 바와 같이 현역 수색대원과 협조 상태에서 임무를 수행 하였다고 사료되나 본인은 그 무렵 전투 중 부상으로 후송되어 군 병원에 입원 중이었다고 기억됨.

8.
본건에 관계되는 참고사항 진술은 본인의 사견을 겸하여 귀하의 질의에 대한 본인 나름대로의 결론을 맺을까 함.

사견 --
유격대 간부 등에 대한 총살형은 극단적으로 말해서 군법과 인도를 무시한 순전한 사적 감정에서 야기된 처사라고 사료됩니다.

17연대 1대대 책임관으로 하여금 자기 휘하에 있었던 대원 등이 사전에 승낙도 없이 타 부대로 무단리탈 하였다면 물론 열화와 같은 분노를 느꼈겠지요.

그러나 좀더 냉철한 책임관이었다면 그네들을 극단적 방법으로 총살을 감행하기에 앞서 그네들(유격대원)을 유인(?)한 김영필 소령과 그의 하명을 받고 실행한 본인에 대한 조치를 자신의 상사에게 보고하여 그의 해당하는 처벌을 꾀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불철주야 우국충정에 불타고 있는 그네들을 단순한 사감으로 손쉽게 처단하였다는 것은 심하게 말해서 천인공노할 사건입니다.

본인이 알고 있는 당시의 유격대원들은 6.25남침한 괴뢰군에게 억울한 희생을 당한 유족들로 구성한 반공청년들로 철두철미한 반공의식 속에서 불같은 복수심과 우국하는 참다운 마음으로 뭉쳐진 사조직체로서 이네들에게도 현역 군인법이 과연 적용 되느냐는 문제입니다.

그네들의 궁극적인 목적달성은 언제 어디서나 군 작전에 도움이 되고 반공청년으로 젊음을 불태울 수만 있다면 그네들이 갈망하는 “복수”는 소기에 원을 이루며 대국적으로는 조국에 대한 충정을 다 한다고 자부 하였을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소속된 부대를 탈출하여 이적행위를 자행 하였다면 그러한 단죄는 가능 하겠지요.

단지, 그 당시 전시에만 적용되는 이른바 분대장이상에게 부여된 즉결처분권을 그릇되게 적용하여 총살형을 집행 하였다 함은 실로 전율을 금할 길 없습니다.

기억조차 아련한 당시를 더듬어 가며 미랭한 진술이 되여 죄송합니다. 마는 귀하가 본건을 처리 하시는데 참고가 되었으면 본인은 더없이 다행한 일이며 또한 유족들로 하여금 고인의 명예를 회복하고 억울하게 산화한 영령들의 넋에 조금이라도 위로가 된다면 멀리 이국에서나마 보람을 느끼는 바입니다.

끝으로 본 건을 다루시는 귀하와 귀하 가정에 영롱한 무지개의 서광이 아낌없이 내려 비추기를 두 손 모아 합장하는 바입니다.

1989년 5월 23일 당시 대대정보장교 예비역 육군대위  박       영        식

성    명 : PARK, YOUNG  SIK   (박  영  식)
현 주 소 : 13884 EUCLID AVE. #B-5 GARDEN GROVE, CA92643 (WESTMINSTER ARMS APTS) U. S. A.
당시직위 : 보병 제32연대 3대대 정보장교 보병 제32연대 정보주임 보좌관


(본 글은 미국에 거주하는 박영식씨에게 독수리유격대를 17연대 1대대에서 32연대 3대대로 이동시킨 사실과 독수리유격대의 참전 정황에 대하여 본인(최면택)에게 전해 온 서신이다.

박영식씨는 본 글 서두에 밝혔고, 미국에서 본인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소재를 알게 된 과정을 먼저 밝혀주면 유격대에 관한 답신을 보내겠다며 사뭇 망서렸다.

그러나 본 답신과 국방부에 증언(서면)을 한 후에 다시 귀국을 하여서는 국방부 당국의 담당 조사관과 본인들(최종성대장과 최종철 작전관의 유족들)을 찾아와 좀더 자세하고 진솔한 증언을 해 주었다.)

친애하는 최면택씨 그리고 형제분들에게

귀하의 뜻밖인 서신을 받고 이제야 회신하게 됨을 미안하게 여깁니다.
귀하의 사연을 읽어 가는 동안 귀하의 형제분들의 지극한 효심에 진심으로 감복함과 아울러 멀리 이국에 있는 나의 거처를 탐문한 그 집념 놀랍기 그지없소이다.

귀하의 서신을 1월 20일에 받고 이제야 회답하게 된 것은 나의 거처를 어떤 경로로 어떻게 알아냈느냐는 점이 몹시 궁금하였으며 이에 대한 경유해명을 서신으로 연락하여 준다는 귀하와의 약속을 목 느리게 기다렸던 것과 거의 40개성상이 흘러가 버린 아득한 옛일을 회상하기가 몹시 힘에 겨웠던 관계에 기인되었소이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이토록 오랜 세월이 꿈결처럼 흘러간 옛일을 정확히 되새긴다는 것은 무리이며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더욱이 이곳 재미교포 대부분이 그러하듯 이곳 생활은 한가롭게 감상에 젖을 만큼 여유 있는 생활 양상이 아니기에 그 어려움은 더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귀하 형제분들의 “안타까운 기다림”을 상상할 때 다급한 현실의 굴래 에서 벗어나 옛날의 처절하였던 전장의 광경을 더듬기에 이르렀습니다.
주마등처럼 명멸하는 살벌한 참경 속에서 나는 문제의 유격대의 환상을 더듬습니다.

군번 없는 군인!
진정한 애국 투사들!
전선 없는 전야를 누비며 신출귀몰 종횡무진으로 타공에 헌신하였던 그들!
귀하의 엄친 최종성 고인의 청천벽력 같은 비보에 접하였던 것은 내가 소속하던 2사단 32연대에서가 아니고 부상하여 후송된 야전병원의 간이 침대였다고 기억합니다.

귀하가 여러 증인들로부터 이미 들어서 알고 있다시피 나는 직속상관이었던 김영필 대위(당시계급)의 명령에 의하여 유격대원을 우리 부대로 인솔하여 복명 하였던 것입니다.

내가 비록 추상같은 군령을 받아온 사자이지만 엄연한 소속된 병력을 상대방 부대장과 아무런 사전 타협도 없이 빼낸다는 것이 몹시 주저되며 불법인줄 알고 망설였으나 “유격대 간부들과 그 부대 몇몇 장교(이름은 기억 없음)와도 은밀히 상의된 것이니 귀관은 여러 눈에 띄지 않게 기술적(?)으로 데려 오기만 하면 된다.”는 김 대위 귀띔에 실행하기에 이르렀고 출발에 앞서 여러 유격대 간부들의 의견을 타진도 하였습니다.

그네들의 한결같은 불평은 당시 17연대에서의 처우(군장 및 보급품)가 현역에 비하여 심한 열등에 있어 전전긍긍하고 있던 차에 나의 출현으로 대원 이동에 전폭적인 찬동으로 실행하기에 이르렀다고 나는 당시를 회상합니다.

“어디까지나 자의에 의하여 조직된 반공 투사들! 소속이 어덴들 어떻리! 민족의 공적인 그 무리들을 물리치는데 있어 소속 따위가 무어냐?”하는 소속 의식에 얽매어 있지 않고 원대한 목적 실행에 단안을 내렸던 것으로 기억 합니다.

나는 얼마동안 (얼마나 그들과 고락을 같이 했는데 기간은 기억 없음) 반공정신에 투철한 유격대원을 내 휘하에 있는 현역병보다 월등한 대우로 감쌌으며 비록 나이(연령) 어린 대원에게도 존칭을 썼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내가 전상에서 신음하면서 들은 비보는 나로 하여금 놀라움과 분노를 참을 길 없었습니다. 전신을 엄습해 오는 전율을 느꼈습니다.

“그네들(17연대의 누군지 는 몰라도 즉결처분한 집행자)의 총살형은  확실한 위법이다! 이는 분명히 사감에서 자행된 비겁한 망동이다!”

나는 병상에서 외쳤습니다. 나의 짧은 군법 상식으로는 당시의 즉결처분은 천인공노의 비인도적인 군법이며 이는 일제 군국주의자들이 독전을 위한 수단으로 창출해낸 악법으로 분대장이상 전시에만 적용되었던 것으로 압니다.

“즉결처분”이란 군 작전을 수행함에 있어 막대한 손실을 안겨 주었으며 이적 행위로 단정 되었을 때 일벌백계로 타 군인에게 경각심을 고취시키는 비상수단으로만 감행되어야 하는 것으로 압니다.

재론하건대 그 집행자는 자기를 배신하여 타 부대로 가 버린 유격대원에 대한 사감의 발동으로 돌이킬 수 없는 과오로 엄청난 비극을 자행하였다고 나는 단언합니다.

“엄청난 과오”의 단정에는 또 한 가지 중대한 사유가 있은 즉 당시 유격대는 반공정신이 투철한 우국지사들로 구성된 사조직체로서 군 작전에 협력하는  이른바 지원체로서 국가 병역법에 의한 응소된 징병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런고로 그네들에게는 추상같은 군령이 적용되지 않으며 어데 까지나 관대한 처우가 뒤따라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내가 최종성 고인 외 희생된 몇몇 간부의 영혼에 대하여 몸 둘 바 없이 후회스러운 것은 내가 좀더 정의감에 입각한 군인이었던들 사후 약방문격이지만 신명을 내걸고 억울한 죽음을 당한 고인들의 시비를 가려 집행자를 만나 준엄한 책임 추구와 이에 따른 응분의 대가를 안겨 주어야 마땅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옹색한 변명으로 나는 당시 부상이 완쾌되어 계속되는 군 복무와 보직 이동에 따른 분주한 군 생활(군 정보학교 입교, 수도사단 전속, 미 8군 사령부, 한국군 의장대장 등)로 전전하다 보니 대단히 송구한 말로 나의 뇌리에서 그 엄청난 망각의 일로를 걷고 있었습니다.

귀하의 글월 중 김영필 소령에 대한 오해(섭섭함, 실수)가 있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잘못된 판단입니다.

귀하의 엄친 최종성 고인 이하 전 대원은 한결같이 김소령을 따랐으며 존경하였음은 물론 인간적인 대우에 극히 만족 하였다고 기억합니다.

김영필 소령은 국군 창설당시(국방경비대 시절) 한국군으로서는 처음 제정된 계급 특무상사 출신으로 두뇌가 명석한 지휘관 이였습니다. 여기서 내가 분명히 밝혀 둘 것은 유격대원들의 소속 이동은 강압적인 것이 아니었음을 천명합니다.

김소령으로 하여금 유격대를 우리 부대로 유치한 것은 그 자신의 공명심에서가 아니고, 대 국적인 관점으로 볼 때 그도 우국충정의 발로에서 이었다고 해야 옳겠지요.

다만 김 소령이 “즉결처분”의 기미를 사전에 알았다면 신명을 걸고라도 제지 했어야 하였고 사후에 알았다면 그릇된 사감에서 자행된 비극에 쐐기를 박았어야 했겠지요. 그러나 그의 성품으로 보아 그랬을 만한 이유가 있었겠지요.

근 40년이 흘러가 버린 작금 누구를 원망한들 고인이 다시 소생하는 기적은 없을 것이며 귀하들이 간곡히 원하는 불명예를 깨끗이 지워 버릴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효의 의의는 달성 되리라 믿습니다.

6.25가 안겨다 준 슬픈 동족상쟁의 소산이 어찌 귀하의 엄친의 억울함의 한정 되리요. 이름 없이 피었다가 소리 없이 사라져 간 가련한 넋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입니다.

나는 60이 넘은 인생의 황혼 길을 힘없이 걷고 있는 자로서 이 사회의 차츰 사라지고 있는 윤리와 도덕을 개탄 하다가 “그대들의 참다운 효심에 아직도 그 뿌리는 남아 있구나! 하는 기쁨에 멀리 이국땅 한 모퉁이에서 회심의 미소를 짓는 바올시다.

나의 짜임새 없는 이 증언으로 고인들의 명예의 일부가 되살아났으며, 그대들의 효심에 도움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다행으로 여기는 바입니다.

훗날 이 자가 꿈에도 그리워하는 나의 조국의 땅을 밟게 될 때 고인들의 영전에 부복할 기회가 있기를 갈망하는 바입니다.

1988년  2월 18일(구정 초하룻날)  미국에서    박     영      식

추신: 나의 주소를 알게 된 경유와 김영필 소령의 주소를 알려 주시오.
211.196.25.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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