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 유격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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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고 복 동 (310403-xxxxxxx)
· 작성자 독수리유격대  
· 글정보 Hit : 2321 , Vote : 607 , Date : 2005/09/18 03:31:35 , (4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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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명 : 고   복   동  (310403-xxxxxxx)
주    소 : 경기도 포천군 신북면 만세교리 313
직    위 : 독수리유격대원  독수리유격대 기념사업회 회원


창설 과정

나의 고향은 영중면 성동리였지만 우리는 해방 후 일찍 월남을 해서 청량리에 살다가 6.25를 만났습니다. 우리 아군이 수복을 해서 밀고 올라갔다가 체 한 달이 안돼서 후퇴를 한 것 같아요. 그때 후퇴를 한다고 야단들인데 고향 사람인 김익수씨가 유격대 얘기를 해요. 그래서 유격대엘 들어갔습니다. 김익수씨는 반공활동도 하고 이북을 넘어 다니던 반공투사로 유명하던 사람입니다. 그 양반의 권유로 독수리유격대를 했습니다.

17연대 1대대 합류 당시

17연대에서 기억이 남는 것은 무엇보다도 유격대 간부들이 총살을 당하고 우리들은 옷을 뺏기고 쫓겨난 일입니다.
충주까지 후퇴를 해서는 전쟁은 하지 않고 주로 수색 정찰만 다녔습니다. 밤에는 잠복근무를 2개조로 나갔습니다. 32연대로 가던 날 저녁에도 2개조로 나갔는데 어떻게 해서인지 2개조가 한군데로 모이게 되더라고요. 2개조가 차 두 대에 타고 우리 유격대 본부엘 왔는데 거기서 타느니 안 타느니 하며 얼마를 지체 했다가 떠났습니다.

32연대로 간다는 사실은 몰랐지요. 우리로서는 그저 어디론가 가는가 보다 했지 작전을 나가는지 이동을 하는 건지 따져 볼 계제가 아니었습니다. 32연대로 갈 때는 영문을 모른 채 가서 보니까 32연대 3대대라는 사실을 알았고 반면에 17연대로 돌아 올 때는 알았죠. 헌병이 안내를 했고 차도17연대 차를 타고 왔거든요.
그러나 우리가 도망병이어서 잡혀 온다는 생각은 못했습니다. 이러니저러니 얘기도 없었고 완전군장 한 채로 돌아 왔으며 헌병들도 우리를 도망병으로 알고 안내하는 기색은 없었습니다.

2사단 전체가 이동하기 위해서 제천역(제천인지 확실치는 않음)에 집결해서 열차를 기다리고 있다가 17연대 트럭이 왔으니까 17연대로 소속이 바뀌어 가는가 보다 싶었습니다.
17연대에 도착한 것은 밤이 아니고 오후 늦게였든 것 같습니다. 도착하자 말자 담배 창고(담배를 건조시키는 헛간)에 넣었는데 무장을 해제하고 창고에 넣으니까 뭔가 잘못 됐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때까지도 도망이라는 생각은 못 했습니다.
저녁도 주지 않고 밖에도 나가지 못하게 하니까 뭔가 이상하다고 우리끼리 수군거리기는 했지만 별 걱정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날이 구정 날 입니다. 아침에 떡국을 주어서 먹었습니다. 떡국을 먹고 난 후에 대장과 간부들이 와서 마지막 얘기를 하고 만세를 부르고 나간 후에 한참 있다가 우리를 집합시키더니 그때부터 너희들은 도망병 이라는 겁니다.

너희들도 다 죽여야 하는 건데 간부들이 책임을 졌기 때문에 살려 준다는 것이었고 정월 초 하룻날이 상당히 추운 날이었는데 옷을 모두 뺏었어요. 어떤 대원은  팬티만 입었던 이도 있었는데 그때 분위기는 대장들이 총살을 당했으니까 우리도 뭣하면 죽일 참이었거든요. 우리는 이러니저러니 말 한마디도 못하고 칼빈총을 멘 현역들이 강까지 인솔을 해서는 건너가라고 하는데 그 강이 물살이 센 곳은 얼지를 않고 잔잔한 곳만 얼어 있었어요. 얼은 부위도 좁아서 여럿이 함께 건너가면 깨질까 봐 한 줄로 서서 조심스럽게 건너갔습니다.

강 건너는 적 지역이니까 맘대로 갈 수도 없고 해서 웅성거리고 있으니까 강 건너서 지키고 서 있던 현역들이 우리들보고는 거기서 웅성거리지 말고 빨리 딴 곳으로 가라는 겁니다.
그러는 중에 소대장을 하던 사람들이 얘기를 하는데 의견이 여려 가지가 나왔어요.
나는 김익수 소대장이 얘기를 해서 유격대에 들어갔고 거기서도 김익수씨의 의견을 찬성했습니다.

김익수씨는 그 때에도 배짱이 참 좋았거든요. 김익수씨를 다시 유격대장으로 뽑고 우리가 흩어지는 것보다는 32연대로 가서 유격대를 계속 하자는 의견을 모아서 제천으로 갔습니다. 그 곳에서 신분증이 없으니까 철도경찰에게 조사를 받는데 고생 많이 했습니다.
우리들의 신분을 모르니까 공비들이 아니냐고 문초를 받았는데 대원들이 매를 엄청나게 맞았어요.

그 때도 김익수씨가 “내가 책임자 이니까 내가 책임을 진다. 이 사람들은 공비가 아니니까 때리지 말아라!”하고 배짱 있게 얘길 해서 나중에는 그 사람들(철도 경찰)이 열차도 태워 주고 도와줘서 32연대로 왔습니다.

32연대 3대대 및 수색 중대 배속 당시

우리는 적군과 직접 전투를 하는 것보다는 수색 정찰을 더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32연대가 북진을 하면서부터는 전투에 참가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포천에서와 안동 의성 청송등지에서 공비토벌 할 때는 최영찬 정봉필 대원이 죽었는데 금화 쪽에 북진해서는 많은 대원이 전사를 했고 김익수 대장도 포로가 됐습니다.

청평을 지나 화야산으로 가면서 정말 치열한 전투를 했습니다. 적에게 우리가 포위당했고 적군이 또 아군에게 포위당했습니다. 아군이 포위를 당하니까 우리 수색중대 보고 그걸 뚫으라는 겁니다. 그때 이틀 반나절 동안을 꼬박 굶으면서 작전을 했지요.
이틀 반을 굶으니까  나중에는 지쳐서 적군이 총을 쏴도 움직여지지가 않더군요. 거기서 죽을 고생을 했고 천불산과 373고지에서도 고생을 했습니다.

373고지 전투 때는 현역병 수색중대가 3개 소대 우리 유격대가 2개 소대로 편성되어 있었는데 전투가 끝나고 난 뒤에는 현역과 우리 유격대가 합쳐서 짬뽕으로 2개 소대를 편성했으니까 아군의 피해가 엄청났던 것입니다.

첫째날 둘째 날은 부상자가 아주 많아 나왔고 셋째 날은 373고지를 점령했습니다.
첫째 날은 유격대 일부와 현역들은 정면으로 공격하고 내가 소속해 있던 소대는 옆으로 돌아서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하루 종일 고생을 하다가 오후 늦게 쯤 되서 누군가가 먼저 바위 위엘 올라가니까 중공군이 따르륵 하고 갈겼거든요. 내 바로 앞에 있던 사람이 바위 위에서 총을 맞았는데 끌어내릴 수가 없어요.

머리만 들면 위에서 갈겨대니까 손만 위로 뻗쳤더니 그 사람 손이 잡히는데 손이 부르르 떨리더군요. 끌어내려 가지고 보니까 배를 맞았는데 그 친구는 자꾸 뒤에서 저를 쐈다고 하더군요.
당가를 만들어서 대원들 넷이 들고 내려오다가 집결지에 다 와 가지고는 한사람이 또 총에 맞았어요. 그래서 그 사람은 못 가지고 오고 나중에 총 맞은 사람만 데리고 왔지요.
첫째 날 둘째 날은 계속 공격을 하다가 우리 측의 희생만 났거든요.

셋째 날인데 꼭대기에 바위가 있고 그 바위에 의지하고 중공군이 버티는 겁니다. 373고지가 지형적으로 우리 아군에게는 상당히 불리한 곳이었습니다.
보기에는 별것이 아닌데 꼭대기는 바위가 있고 올라가는 능선이 나무가 없고 몸을 가릴 만한 것이 없기 때문에 그대로 노출이 되니까 올라가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어렵게 해서 바위 밑까지 올라갔을 때는 우리 측 인원이 몇 안됐습니다. 일단 적이 있는 바위 밑에 바싹 붙어 버리니까 적의 직접 사격은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 날 점심에 반찬이 소금에 절인 감자였는데 그걸 먹어서 그런지 목이 타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햇볕도 상당히 따가웠고 포탄이 하도 많이 떨어져서 흙먼지가 무릎까지 빠지고 갈증이라는 것이 말도 못할 지경이었습니다.

머리 위에는 적군이 있고 죽느냐 사느냐 하는 판에 갈증을 못 참는 것이 말이나 되느냐고 하겠지만 그것은 그 경우를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의 생각이고 또 그 경우를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도 안될 것입니다.

평범한 때의 평범한 사람들은 목숨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전쟁터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전쟁터에서 목숨을 아까워하고 적을 무서워하면 그런 군인은 분명히 적군에게 먼저 당하고 맙니다.
적과 대치하고 있을 때에는 자신을 완전히 잊어버리게 되고 죽고 사는 것을 초월해서 공격과 점령하려는 욕심 이외에는 다른 것이 없습니다.

누군가 물을 가지고 오니까 서로들 물을 먹었습니다. 한 사람이 물을 먹느라고 목을 뒤로 젖히니까 따르륵하고 공격을 해서 대원 하나가 목에 총을 맞았는데 피가 그냥 쫙 하고 뻗칩디다.

그때 소위 한사람이 있었는데 팔에는 부상을 당했는지 처매고는 죽을 각오였는지 그냥 서서 예기를 해요. 그 사람 예기가 연대장이고 높은 사람들이 전부 다 부상당해서 내려갔는데 우리가 여기서 살아남을 수가 없다는 거예요. 우리가 죽든지 살든지 이 고지는 뺏어야 하니까 마지막 돌격을 해 보자는 겁니다.

그러고 있던 중에 우리 유격대원 하나가(나는 이름은 모르고 우리 유격대원 이라고만 알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 예기로는 송만복대원이라고 함) 바위위로 먼저 올라갔어요.
우리가 바위 밑에 붙어 있고 적은 바로 바위위에 있는 상태였거든요.
적은 수류탄을 던질 필요도 없이 지붕 위에서 마당에 떨어뜨리는 것처럼 그냥 핀을 뽑아서 놓기만 하면 바로 우리 머리 위에서 터지는 겁니다. 처음에는 소총이고 수류탄이고 포탄이 비 오듯 퍼부었는데 마지막으로 우리가 공격을 할 때는 우리가 움직임을 보일 때만 응사를 했거든요.
나중에는 적군도 실탄 보급이 딸렸던 모양입니다.

바위들이 한길에서 두길 정도였는데 한 사람(송만복대원)이 올라가서 “없다!”하고 소리를 치니까 우리 아군이 왈칵 덮쳤습니다.
우리는 소위까지 합쳐야 7-8명 됐습니다. 올라가서 보니까 저항하던 놈들이 총도 내버린 채 맨몸으로 저만큼 뛰어 내려가는데 우리들 서넛이 집중사격을 해도 맞지 않더군요. 그 놈은 살아서 도망을 했지요.

나는 전날 공격을 했다가 내려간 곳에 우리대원 시체를 그냥 두고 간 생각이 나서 확인하려고 내려가는데 호 속에서 중공군이 손만 보여요. 호 속에 숨어서 손만 들고 있는 겁니다. 그 놈을 잡아서 때리려고 하니까 우리보고 총을 달래요. 그러면 제가 그 아래로 중공군 쪽에다 쏘겠다는 겁니다. 물론 말은 통하지 않고 시늉만으로 아부를 하는 것이지요.
전날 우리 아군이 죽은 곳엘 가보니까 총이고 시체가 그대로 있었습니다. 우리 아군 같으면 노획이라고 해서 총이나 장비를 전부 가져갔을 텐데 그냥 내버리고 갔더군요.

내가 알기로는 373고지 점령 때 적군은 두 명이 살아서 도망을 쳤고 포로를 두명인지 세명인지 잡고 포탄지고 올라오던 놈이 몇 명 죽었다는 예기를 들었는데 그렇게 보면 373고지는 적군도 몇 명 없었던 것을 못 뺏고 그렇게 고생을 했습니다.
373고지는 결국 점령은 했지만 우리 아군측의 피해가 더 많았습니다.

높은 사람들의 생각을 알 수도 없고 작전상으로도 그 고지가 얼마나 중요했는지는 몰라도 꼭 점령을 했어야만 했는가? 의문이 갑니다.
전투를 시작할 때 현역 3소대 우리 유격대 2소대 합쳐서 5개 소대가 공격을 했는데 3일후 최종으로 점령을 했을 땐 현장 인원이 7-8명 뿐 이었습니다. 고지를 점령하고 나서 현역과 우리 유격대를 통합해서 3개 소대로 편성을 했습니다.

373고지 전투뿐만 아니고 어느 전투에서나 전사한 사람들은 용감한 사람들이고 앞서 나가 싸우던 사람들입니다.
또 373고지에서 생각해야 할 것은 현역과 우리 유격대의 차이점입니다. 현역들은 그렇지 않다고 하겠지만 우리가 보기에는 현역병들은 겁이 많았습니다. 마지막 공격조 7-8명 중에 유격대원이 5명이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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