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 유격대
../index.html

· 제 목 김 동 호 (211213-xxxxxxx)
· 작성자 독수리유격대  
· 글정보 Hit : 2487 , Vote : 608 , Date : 2005/09/18 03:34:27 , (2332.5)
· 가장 많이본글 : PARK, YOUNG SIK (박영식)  
· File1 : 14.jpg (29.4 KB), Download : 127


성    명 : 김   동   호 (211213-xxxxxxx)
주    소 : 경기도 포천군 이동면 장암리 317
직    위 : 독수리유격대원  독수리유격대 기념사업회 회원


창설 과정

나는 이동면 장암리가 고향입니다. 농사를 짖고 있다가 6.25가 나기 전에 민주당에 입당한 후 월남 했습니다.
최종성씨는 서북청년단을 조직해서 책임자로 있었는데 그 분도 몰수를 당하고 월남해서 정보활동을 하던 사람입니다.

9.28이후 이동면에도 수복은 됐지만 질서가 없어서 치안이나 행정이 엉망이었을 때 황영태씨가 임시 면장을 했어요. 내가 면사무소에 근무를 하는데 도평리 백운동에서 빨갱이들이
습격을 하니까 일동으로 후퇴를 했다가 다시 포천으로 갔습니다.

그 무렵 중공군이 나온다는 소문이 쫙 퍼졌을 때였는데 사람들이 다시 남쪽으로 피난을 내려오기 시작 하니까 우리는 3.8선 이북의 고향을 지키자고 유격대를 조직 했던 것입니다.

가족들을 영등포로 내려 보내고 나는 유격대에 들어갔는데 그때 가족과 혜여저서는 지금까지도 생사를 모릅니다. 그때 나도 남들처럼 가족을 데리고 피난을 했다면 가족을 잃지는 않았겠지만 그 당시의 우리는 그렇지를 못 했습니다.
가족을 지키는 것보다는 공산군과 싸우기 위하여 북쪽으로 들어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 했습니다.

그 당시의 심정은 아무도 모릅니다.
또 설명을 해도 이해가 되질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싸웠던 것입니다.
요즘 사람들이 보면 미친 사람들이죠. 그때 가족을 데리고 피난갔던 사람들은 모두 탈 없이 잘 살고 있으니 그 사람들이 우리를 보면 어리석고 못난 짓이었다고 탓 할 겁니다.

유격대가 포천에서 조직되고 훈련을 받았는데 옷은 민간복 차림에 일동엘 들어왔습니다. 일동 무른 배미로 해서 양조장 자리로 왔는데 거기서 17연대 현역들하고 같이 한 겁니다. 김익수씨와 민영태씨가 소대장을 했습니다.

32연대 3대대 및 수색 중대 배속 당시

32연대로 가서는 우리 유격대가 파견을 나가 수색정찰과 공비토벌을 했습니다. 의성에서 청송까지 넘어가 수색 활동을 했는데 한번은 적의 기습을 받아 교전을 했는데 그때 우리대원 정봉필이가 전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사실 적이 아니고 전투 경찰이 실수로 우리를 공격해서 전투가 벌어졌던 겁니다.

공비 토벌이 끝나니까 차를 타고 양평으로 이동을 했습니다. 거기서부터 전투를 하며 청평 현리 국망봉을 넘어서 김화까지 갔습니다.

상판리 새말이라는 곳에 수색을 나갔는데 아기를 업고 가는 부인을 만났어요. 민간인을 보니까 반가웠습니다. 민간인을 보면 탐문수색을 해야 합니다. 그 여자 얘기가 이 집에도 중공군이 있고 저 집에도 중공군이 있다는 거예요. 그러는 중에 중공군이 집 뒤 언덕배기로 기어올라 도망가는 것을 보고는 사격을 하니까 굴러 떨어집디다.

이 쪽에도 있다고 하던 집에 가서 공포를 쏘고 소리를 치니까 세 놈이 손을 들고 나오는데 그 안을 보니까 기관총도 있고 실탄도 수북하게 많아요. 세 놈이 기관총까지 있고 실탄도 수북하게 쌓여 있는데 한 놈이 와서 소리친다고 손을 들고 나오니 그것이 바로 패잔병의 심리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전쟁에는 사기가 중요하다는 겁니다.

포로 세 명을 잡고는 만년필도 뺏고 상해 농구화도 뺏어서 나누어 가졌지요. 중공군은 상해 농구화라고 아주 좋은 신발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포로 세 명을 후송한 다음 기분 좋다고 하면서 밥도 짓고 목욕도 하는데 정찰기가 와서 뱅뱅 돌다가 가 버리고 나서 얼마쯤 있다가 비행기가 와서 폭격을 하는 겁니다. 우리가 목에다 대공표시를 하는 보자기를 두르고 다녔는데 그걸 펴놓고 있었는데도 정찰기가 정찰을 잘못해서 폭격을 받은 것입니다.

갑자기 포탄이 떨어지고 난리가 나니까 주섬주섬 해 가지고 봇도랑으로 피했는데 이강헌이 이마에 피가 흘러요. 본인은 자기가 맞은 것도 모르고 있어요. 이렇게 아군이 아군에게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았어요.

국망봉을 타고 올라가는데 우리 유격대는 몇 갈래로 갈라져서 갔어요. 아마 5월 초순쯤 됐을 겁니다. 국망봉 도마치(도마치) 고개를 넘어가는데 더우니까 도랑물을 죽죽 마시면서 올라가다 보니까 우리 국군이 전멸해 있잖아요. 그러니 송장 썩은 물을 그렇게 마셨던 겁니다.

그리고 광덕리 덕골에서는 찦차를 노획해서 사창리 대대 본부에 갖다 주었는데 보상금이 40만원이 나왔다는 예기는 들었지만 우리하고는 모르는 일이고 포로를 잡건 노획을 하건 우리 유격대엔 아무 것도 없었어요. 병권이 하고 강헌이도 포로를 다섯인가 잡은 적이 있고, 우리 유격대들은 사실 보상 같은 것이 없으니까 포로야 잡아서 후송을 했지만 무기 같은 것은 관심도 없고 가져오지도 않았어요.

천불산 전투 때 일입니다. 수색 대장이 우리 유격대들을 철모도 벗기고 총도 없이 수류탄 두발만 주고는 정찰을 해 오라는 겁니다. 수류탄 두발만 주면서는 “중공군이 되어 가든지, 잡혀가든지, 살아오든지 마음대로 하라!”는 거예요. 철모도 없고 총도 없이 정찰을 나갔다가 아니나 다를까 기습을 받았습니다. 거기서 나는 부상을 당하고 후송이 되었습니다.
211.196.25.233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證言者 목록     독수리유격대 2005/06/26 1995 583
19    윤 인 섭(77세)     독수리유격대 2005/09/18 2387 592
18    윤 수 현 (300610-xxxxxxx)     독수리유격대 2005/09/18 2652 621
17    박 관 운 (280605-xxxxxxx)     독수리유격대 2005/09/18 2584 609
16    안 윤 호 (291217-xxxxxxx)     독수리유격대 2005/09/18 2473 607
15    조 용 세 (260629-xxxxxxx)     독수리유격대 2005/09/18 2547 607
14    이 기 명 (310730-xxxxxxx)     독수리유격대 2005/09/18 2431 626
13    정 은 섭 (261030-xxxxxxx)     독수리유격대 2005/09/18 2362 609
12    김 종 운 (330920-xxxxxxx)     독수리유격대 2005/09/18 2458 603
   김 동 호 (211213-xxxxxxx)     독수리유격대 2005/09/18 2487 608
10    고 복 동 (310403-xxxxxxx)     독수리유격대 2005/09/18 2321 607
9    최 면 수 (341102-xxxxxxx)     독수리유격대 2005/09/18 2545 602
8    민 병 권 (300807-xxxxxxx)     독수리유격대 2005/09/18 2497 599
7    이 지 용 (350401-xxxxxxx)     독수리유격대 2005/09/18 2842 607
6    이 규 화 (310701-xxxxxxx)     독수리유격대 2005/09/18 2822 606
5    이 강 헌 (221210-xxxxxxx)     독수리유격대 2005/09/18 2505 575
4    박 홍 진 (291001-xxxxxxx)     독수리유격대 2005/09/18 2820 607
3    독수리유격대편 - 김익수(220215-xxxxxxx)     독수리유격대 2005/09/18 2931 596
2    PARK, YOUNG SIK (박영식)     독수리유격대 2005/09/18 3594 600
1    현역 지휘관 편 - 김영필 (261122-xxxxxx)     독수리유격대 2005/06/26 2525 492

          1
 
Copyright 1999-2021 Zeroboard / skin by Prosense™
2004 독수리 유격대. 이 사이트의 모두 권리는 독수리 유격대가 소유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