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 유격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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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박 홍 진 (291001-xxxxxxx)
· 작성자 독수리유격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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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명  : 박    홍    진 (291001-xxxxxxx)
주   소  : 경기도 포천군 영중면 야미리 440  
전   화  : 0357-536-7200
직   위  :  독수리유격대 제 1소대장 , 독수리유격대 기념사업회 총무, 독수리유격대 이대 기념사업회 회장


창설 과정

해방이 되기 전에 본인의 선친(박성순)께서는 함경도 웅기읍에서 운수업을 하시다가 해방이 되자 고향인 철원군 영평읍으로 이사를 하셨습니다.
당시에 본인은 4년제 중학교에 다니다가 영평으로 왔지요. 해방 후에 3.8선이 생기고 영평은 이북 땅이 되니까 영평에서 다시 이사를 하려고 했는데 집안 친족들이 만류를 해서 월남을 못했습니다.

영평은 온통 공산당 세상이었는데 아버님께서는 노동당에 대항을 해서 민주당에 입당을 하셨어요. 노동당이 좌익이고 민주당이 우익이었는데 청우당 이라는 정당도 있었지만 노동당과 민주당이 주로 대립을 했고 대세는 노동당 쪽 이었습니다. 선친께서는 조만식 선생 계통인 민주당의 철원군당 조직 부장을 하시면서 노동당에게 재산을 몰수당하고 쫓겨나는 부르주아(BOURGEOISIE.여기서는 지주 계급)를 도왔습니다.

본인은 1945년 영평국민학교 선생을 하다가 이동국민학교로 전임이 되었습니다. 아버님이 민주당 조직 부장이고 본인도 민주당원이니까 이동국민학교에서는 반동으로 낙인이 찍혀 있는 상태였습니다.

국민학교 선생들이 모두 로동당원인데 나와 여선생 두 사람만이 민주당원이니까 항상 외톨박이가 되고 반동으로 따돌림을 받았습니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선생들이 모여서 세포 위원회를 하는데 나와 여선생만 빠졌어요.

6.25가 터지고 인민군이 이남으로 밀고 내려가니까 이동 국민학교 선생들이 경상도의 무슨 학교 교장 또는 경상도 무슨 면장 등으로 감투를 쓰고 부임했는데 공산군이 다시 밀리게 되니까 제일 먼저 선생들이 쫓겨 오고 다음에 내무 서원들이 쫓겨 오더니 나중에는 인민군이 쫓겨 오더군요.

9.28 서울이 수복되고 국군이 북진을 하면서 포천을 지나 성동 쪽으로만 진격을 하였기 때문에 국군이 통과하지 않은 지역은 빨갱이들이 그대로 설치고 있었습니다.

이동국민학교 교장 선생이 함경도 사람이었습니다. 국군이 진격을 하니까 교장은 선생들을 다 데리고 이북으로 밀려갔어요. 아버님과 나는 미리부터 그런 눈치를 채고는 빠져서 도망치기로 약속했습니다.

국군이 진격해서 북쪽으로 올라간 후에도 이동면 도평리와 백운동 쪽에는 빨갱이 소굴이었습니다. 결국 나의 선친께서는 도평리 덕배에서 빨갱이들에게 체포되어 희생되셨는데 시신도 찾지 못했습니다.

나의 경우는 6.25 이전부터 반공 사상을 가졌고 공산당의 치하를 체험했을 뿐 아니라 선친마저 공산당에게 잔악하게 희생되셨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반공에 앞장서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최종성 대장이 유격대를 만들고 향토를 지킨다기에 적극적인 동감을 가지고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향토를 지킨다기에 적극적인 찬성을 했습니다.

9.28 서울 수복 후 국군이 진격할 때 포천은 성동에서 전투가 치열했고 그 외는 별다른 전투 없이 대로로만 진군을 했기 때문에 동내마다 빨갱이가 모여 있었고 이동면 특히 도평리 지역은 그대로 적 치하에 있던 것을 지역 청년들이 치안대 청년방위대등을 조직하여 토벌 했던 것입니다.

포천에서 민간인들로 조직됐던 저항 단체로는 특히 유봉열씨가 청년 부대를 조직해서 이동에 공비들을 토벌했고 임찬호씨의 소리봉부대와 최종성씨의 독수리유격대등이 있습니다.

최종성, 최종석, 최종철 형제들은 6.25 이전부터 월남해서 반공 활동을 했으며 6.25때에는 피난을 했다가 9.28수복 후 고향에 돌아와서 유격대를 조직 하였던 것입니다.
독수리유격대도 처음의 취지는 향토를 지키기 위하여 조직된 것이었고 주로 일동 이동지역에서 작전에 임했으나 규모가 63명으로 커지고 현역 부대와 합류하게 되자 체계를 갖추고 전국적인 활동을 폈던 것입니다.

독수리유격대는 6.25당시 어느 유격대보다도 용감하고 대규모적으로 활동을 했습니다.
국군으로부터 안타까운 사건(간부 5명의 총살 및 대원의 적진 추방 사건)을 거치고도 끝내 애국정신을 잃지 않고 각종 전투에 임하면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습니다.

보병 제 17연대 1대대 배속 당시

우리 유격대가 창설 되어서는 자체적으로 도평리 장암리 사직리 일동등지에서 향토를 방위하고 지방 빨갱이와 패잔병들을 토벌하다가 일동면 화대리에 주둔하고 있던 제17연대 1대대 부대대장 김영필 대위의 주선으로 1대대에 배속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자체적으로 활동한 것이 한달 정도 되었고 1대대에 배속된 것도 한달 정도가 된 것으로 기억됩니다. 1대대에서는 군복이나 장구류를 지원하여 주었고 우리 유격대에서는  현역과 같이 수색 정찰 임무를 수행하였습니다. 우리 유격대원들은 거의가 포천지방 청년들이었으므로 일동에서 수색 정찰 임무를 잘 수행하였던 것입니다.

1950년 12월 31일 저녁 중공군들이 수입리 방면에서부터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중공군 일부는 수입리 쪽으로 해서 강을 끼고 현재 일동 중고등학교 쪽으로 공격을 했고 일부는 현재 삼거리에 검문소가 있는 화대리의 1대대 본부를 공격했습니다.

그날 저녁 나는 1대대 본부에 있었는데 우리 유격대가 2개조인지 3개조인지 제비울(사직리)쪽으로 수색 정찰을 나갔다가 채 돌아오기도 전에 우리 부대가 후퇴를 했습니다. 중공군이 조명탄을 쏘고 듣던 대로 북을 치고 나팔을 불면서 공격을 해 왔습니다.

대대 본부는 먼저 후퇴를 하고 정찰을 나갔던 유격대원들은 몇 갈래로 흩어져서 후퇴를 했는데 청평을 지나고 양평에서 다시 집결을 하니까 충주까지 후퇴를 하라는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충주에 도착해서는 수색 정찰과 과수원 옆에 있던 비행장을 경계 근무했습니다. 남한강을 건너다니며 수색 정찰을 했는데 그 곳이 당시에는 중원군 동량면 목행리였습니다.

17연대에서 32연대로 갈 적에는 날짜를 기억할 수가 없고 우리가 근무를 나갔는데 트럭 2대가 스몰 라이트만 켜고 왔으며 그 차를 타고 가다가 중간에서 32연대로 간다는 얘기만 나온 것 같습니다.

32연대로 가서는 얼마 안 있다가 (본인 생각으로는 1주일 정도 머문 것으로 생각되나 다른 대원들은 10여일 이였다는 주장도 있음)부대 전체가 이동을 하기 위해서 군장을 하고 풍기 역에서 열차를 기다리고 있던 중에 헌병이 인솔을 했고 17연대로 돌아간다는 사실도 알았지만 우리가 잡혀간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완전군장 한 그대로 돌아왔고 인솔한 헌병들 역시 잘못된 듯한 언행이나 표시가 전혀 없었으며 그때까지 우리가 17연대에서 도망 왔다는 얘기도 없었고 그저 32연대로 배속이 바뀌었다가 다시 17연대로 배속이 바뀌는 줄만 생각을 했습니다. 17연대 1대대에 돌아와서 하차를 하니까 무장을 해제시키고 담배 건조장으로 집어넣을 때서야 잘못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창고에 갇혀 있을 때는 대장과 간부들을 본 기억이 없으므로 다른 창고에 갇혔던 것으로 알았으나 후에 알고 보니 대대 본부로 데려 갔던 것을 알았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대장과 간부들이 와서 얘기를 했는데 우리들은 3열 횡대로 서고 그 앞에 간부들이 섰으며 주위에는 집총한 현역들이 1개 분대정도 서 있었고 우리 주위도 현역들이 여기저기 지키고 있는 상태에서 “너희들은 군법 제 ? 조(9조 라고 한 것 같음)에 의하여 처벌한다. 고 선언했던 생각이 납니다. 마당에 우리가 서 있고 그 앞에 초가집이 있었는데 조금 높은 툇돌 위에서 유창훈 소령이 올라서서 선언을 했는데 그 때 유창훈 소령이 들고 있던 책의 표지가 노란 색이었던 기억도 나고 그 때 까지만 해도 우리한테 공갈 때리거나 겁을 주려고 그러는 것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대장들이 만세를 부른 것은 갇혀있는 상태에서 만세 소리도 듣고 총소리도 들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32연대 3대대 및 수색 중대 배속 당시

1951년 1월 12일 보병 제17연대 1대대 부대대장인 김영필 대위가 32연대 3대대장으로 전속되었고 독수리유격대가 32연대로 이동했다가 17연대로 되돌아 와서 대장과 간부들이 총살을 당했으며 그 때가 1951년 2월 6일 입니다. 그러므로 32연대 3대대로 가서 몇 일정도 쉬었고 10여일 정도 파견도 나갔었다는 대원들의 증언을 참고하면 17연대에서 32연대로 간 것은 51년 1월 20일에서 25일 경이 될 것입니다.

2월 3-4일경 32연대에서 17연대로 돌아왔고 2월 6일 간부들의 처형 사건이 발생되었으며 (간부들은 음력설날에 처형되었으며 환산을 하면 51년 2월 6일이 음력 정월 초하루임) 다시 32연대 3대대로 김영필 대대장을 찾아간 것은 2월 9-10일경으로 추정이 됩니다.

32연대 3대대로 배속이 되서는 계속 공비 토벌을 했는데 우리 유격대는 충북 단양, 경북 의성, 청송, 의흥, 안동, 풍기 등에서 토벌 작전을 했고 이중에는 4-5명씩 파견을 나가서 잔당을 소탕하기도 했습니다. 그 기간이 2월에서 3월 중순이나 말까지였던 것 같고 그 다음 양평으로 올라와서 전후방 교대를 하면서 32연대 3대대에서 바뀐 것은 3대대장이던 김영필 소령이 32연대 정보 주임으로 전속 되면서 였는데 당시 김영필 소령은 우리 유격대에게 상당한 관심과 배려를 해 주었던 것이며 또 우리 유격대 역시 공비토벌이나 수색 정찰 임무를 수행하면서 발휘한 능력을 높이 평가하였기 때문에 정예 부대로서 인정을 받고 연대 수색 중대로 배속을 받았던 것입니다.

수색 중대로 배속이 바뀐 우리 유격대는 북진을 하면서 제일 먼저 화야산 전투를 했고 가평군 설악면, 청평 발전소, 현리, 하판리와 상판리 샛말, 청계산, 강씨봉, 도성고개, 백운산 광덕산, 하오 고개(복주산), 도덕동 육단리, 사곡리, 천불산, 373고지 734고지 전투를 하고 계웅산을 지나 김화까지 전진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유격대가 모두 한곳으로만 진격을 한 것이 아니고 때로는 서로 갈라지고 합치면서 진격을 했으니까 통과 지명은 서로 다르게 기억되기도 할 것입니다.
우리 유격대는 맡은 바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했지만 373고지 전투에서는 희생이 많았습니다.
373고지에서 희생은 우리 유격대뿐만 아니라 수색 중대나 연대 본부 현역들도 피해가 엄청났습니다.

본인은 유격대원이면서 연대 본부 작전과에 근무를 했습니다.
본인은 개인적으로는 373고지를 탈환 하면서 아군의 피해가 극심했던 것은 무리한 작전을 지휘관들이 강행했기 때문이며 고지를 탈환 하였어도 그것은 실패한 작전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나는 연대장 명의에 귀향증을 가지고 포천엘 나왔다가 가족을 찾지 못하고 다시 32연대에 복귀하여 현지 입대를 했습니다. 다른 대원들도 현지 입대를 하거나 귀향했던 대원들은 유격대 복무 기간을 인정받지 못하고 재차 영장을 받고 군 복무를 마쳐야 했습니다.

독수리유격대 활동을 증언 하면서

본인을 포함하여 우리 생존 대원들은 항상 스스로의 행적이 장한 애국 행위였다고 자부하여 왔습니다. 아울러 17연대에서의 사고는 사실대로 밝혀져 우리 유격대원의 명예가 되찾아져야 하며 사고로 희생된 지휘관들이나 구국 전선에서 장렬하게 산화한 전몰 대원들에게도 위로가 되어야 한다고 믿어 왔습니다.

40년이라는 참으로 긴 세월이 흘러 모든 기억이 흐려지고 자료마저 인멸된 이제 국방부 당국에서 사고의 진실을 밝히고 독수리유격대의 전공을 확인하여 주셨으며 전사편찬위원회에서 까지 자료를 확인하여 전사의 기록으로 남겨 주시려는 노력에 실로 진실된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생존대원들은 오래전부터 6월이 되면 모임을 같고 전몰대원의 명복을 빌며 위로하여 오던 중 국방부로부터 독수리유격대의 공훈이 확인되는 것을 계기로 해서 친목회를 기념사업회로 확대 개편하고 전적비 건립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본 사업에 도움을 주시는 재향 군인회와 국방부. 포천군청. 포천문화원. 보병 제8사단 사령부. 전사편찬위원회 전사실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유격대원들은 이제 60-70세의 연륜이 되었으며 40여년 세월을 지나오면서 유격대의 정신과 업적을 내세워 자랑하지도 않았고 주장하지도 않았습니다.
그것은 순수 분명했던 우리의 애국정신과 자취에 반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들 자신을 위하는 명예가 아니고 올바른 역사와 자라나는 후손들에게 애국의 근거를 남겨 주기 위해서도 독수리유격대의 행적과 정신이 바르게 평가되길 바랍니다.

1. 국민이 국가를 지켜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국가가 위난에 처했을 때 국민 된 사람이면 누구나 국가의 부름을 받아 구국 전선에 나서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유격대는 국가의 부름이 있기 전에 스스로 앞장서 나섰던 것이며 진실로 우국충정 하는 우리에게 17연대 1대대에서는 정당치 못한 방법으로 잔혹 행위를 저질렀습니다. 우리 유격대로서는 참으로 기막힌 일이였습니다. 대한민국을 지키겠다고 나섰다가 대한민국 국군에게 총살과 적진으로 추방되는 엄청난 배반을 당했음에도 또다시 대한민국을 지키고자 뭉쳤던 정신이 얼마나 고귀한 애국이었습니까?

대한민국 국군에게 총살을 당하면서도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던 그들의 정신!
엄동설한 속에 발가벗겨져 적진으로 추방되는 만행을 당하고서도 다시 뭉쳐 대한민국을 지켰던 애국 충정!
40년을 두고도 소리 내지 않았던 그 침묵이 바로 독수리유격대의 정신이었습니다.
이제는 독수리유격대의 장한 애국정신이 평가되고 명예로서 전몰영령과 자라는 후대들의 심중으로 전해지길 바랍니다.  

2. 17연대 지휘관의 만행은 실로 천인공노할 죄악이었습니다. 민간인들의 구국 활동을 올바르게 평가하여야 할 군인들이 유격대의 전공을 제몫으로 하려는 다툼 속에서 만행까지 저지른 것은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이제 와서 잘잘못을 따지자는 것이 아니라 다시는 이러한 우가 범해지지 않도록 군 당국은 본 사건을 통찰하여 교훈으로 삼기를 바랍니다.

3. 보병 제17연대 1대대에서 사고에 관련했던 관계자들은 스스로 뉘우침으로서 고인들의 명복을 빌고 자신을 바로 세우기 바랍니다.

4. 본 기록은 국방부 조사대의 조사 과정에서 조사 되였던 내용과 전사편찬위원회 전사실장님과 여러 위원께서 우리 대원들과 면담하셨던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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