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 유격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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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이 강 헌 (221210-xxxxxxx)
· 작성자 독수리유격대  
· 글정보 Hit : 2505 , Vote : 575 , Date : 2005/09/18 03:15:29 , (5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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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명 : 이   강   헌  (221210-xxxxxxx)
주   소 : 경기도 포천군 이동면 장암리 505
직   위 : 독수리유격대원 독수리유격대 기념사업회 부회장


창설 과정

우리 유격대는 9.28 서울 수복이 되고  국군이 다시 북진하였을 때 포천군의 청년들이 모여서 조직한 것입니다.

우리 국군이 밀려 내려갔다가 다시 북진 하였을 때 큰길로만 북진을 했지 구석구석마다 완전히 적을  토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빨갱이들이 산속이나 외진 골짜기 마을로 숨고 우리 아군은 북쪽으로만 쳐들어가고 해서 이동 도평리 백운동쪽으로는 빨갱이들이 떼를 지어 있었습니다.

그걸 우리 이동 청년들이 방위대를 조직해서 토벌한 것입니다.

그때는 지서에 경찰들도 있고 소방대도 있었지만 숫자가 얼마 되지 않았고 우리 이동 청년들이 합세를 해서 토벌을 했는데 포천군에서는 우리 이동이 제일 잘 했다고 상금 40만환을 받았어요.
그40만환으로 군복을 한 벌씩 사서 입었습니다. 그러고 있는데 중공군이 나오니까 국군이 다시 밀려 내려옵디다.

바로 그 무렵에 우리 유격대가 창설 되였어요.

포천에서 이동 지서로 전화가 왔는데 최종성씨가 이강헌이를 찾는다고 해요.
전화를 받으니까 최종성씨가 언제 어디서 만나자고 하고는 우리 지서엘 찾아 왔어요.
그래서 만났더니 “유격대를 조직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느냐? 뭘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하는 것이 좋은지 네 생각을 말해 봐라!”하고 물어요.

그래서 나는 “우리는 첫째 향토를 지켜야하고 또 공산당에게 갖은 고통을 당했으니까 목숨을 걸고 공산당을 처 부셔야 합니다.”하고 내 생각을 분명하게 주장 하니까 종성이 형님(최종성 대장)이 “좋다! 그만하면 됐다.
유격대에 들어라!”하고 오케(O.K.)를 합디다.

그래서 내가 같이 있던 청년방위대를 데리고 유격대에 들어갔습니다.

그때는 서로 먼저 피난 갈려고 아우성치던 때입니다.
또 젊은이들은 인민군이든 국방군이든 전쟁터에는 잡혀가지 않으려고 산이나 굴속에 숨어서 지내든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우리 유격대원들은 모두 이북(공산당)의 학정을 받아 본 사람들이고 또 피해를 받은 사람들이에요.
그러니까 모두들 자진해서 나섰던 것입니다.

우리 유격대의 총무(기념사업회)를 보고 있는 박홍진도 그 사람 부친께서 민주당 위원장을 하다가 빨갱이한테 희생되고, 최면수대원의 형인 최면복이도 정보원을 하다가 조치미에서 빨갱이한테 희생 됐습니다.

모두가 같은 마을에 살던 사람들이고 친척들입니다.
최종성대장과 최종철작전관 최종석대원이 친형제이고 최면수는 같은 집안입니다.
이강록이도 내 동생인데 373고지에서 전사 했고. 이기재와 이경재, 오득환과 오부환, 이제용과 이제영이 똑같은 형제들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유격대를 조직하게 된 목적이나 취지는 첫째 우리 향토를 지키겠다는 것이고 둘째가 반공입니다.

지금 우리가 늙어 버렸다고 해도 지금 김일성이가 다시 처내려오면 우리는 또 나가 싸울 것입니다.

말로 하기 쉬워서 하는 소리가 아니고 그런 각오와 자신이 있습니다.
우리 이동 청년들이 먼저 유격대를 조직하자는 모의를 했고 이어서 영평 포천 내촌 일동 사람들이 모여서 독수리유격대를 조직했는데 포천 국민학교에서 훈련을 받고 일동으로 들어 왔어요.

무기는 구구식소총, 다발총, 앰원 등 각양각색으로 노획하거나 여기저기서 주워 모은 것들이고 의복은 구해 입은 사람도 있고 사복을 한 대원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한달정도 패잔병이나 빨갱이들을 소탕하고 있다가 17연대 1대대가 화대리에 주둔하면서 부대대장 김영필대위가 우리 유격대를 보고 주선을 해서 1대대로 배속을 받은 것입니다.

1대대 하고는 손을 잡은 까닭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유격대는 일단 장비가 필요했고 1대대 역시 우리 유격대를 이용해서 수색정찰을 하거나 병력 보강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서로를 위해서 합작을 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보병 제17연대 1대대 배속 당시

우리 유격대가 조직돼서 일동으로 들어 왔는데 그때는 계속 수색 정찰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고  1대대로 와서도 똑같이 수색을 다녔습니다.

앞에서 말 한대로 포천이 수복됐을 때는 우리국군이 포천 양문을 거처 운천 쪽으로 진격을 하였기 때문에 이동이나 도평리 쪽에는 인민군이 몰려들었습니다.
도평리 백운동 약사골 등은 빨갱이 소굴이 됐어요.

이것을 우리 향토 방위대가 토벌 했던 것이고 우리 유격대가 조직돼서도 계속 토벌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토벌한 것이 한달 정도 됩니다.
그러다가 양력으로 그믐날(50년 12월 31일) 중공군에게 당했는데 12월 28-29일쯤 우리 유격대가 정찰을 하면서 중공군이 나오는 것을 확인을 하고 대대 본부로 와서 보고를 하니까 대대 본부에 있는 놈들이 거짓말이라는 겁니다.

29일에는 제비울 먼 두둑(원평)에서 중공군을 발견하고 거기서 내가 다리까지 삐었습니다. 쩔뚝거리면서도 대대 본부에 와서 보고를 하니까 믿지를 않아요.
그런 나뿐 놈들이 어데 있습니까? 사방을 다니면서 고생을 하고 정탐을 해서 보고를 하면 믿고 대책을 세워야 하는데 망할 놈들이 믿지를 않고 있다가 아니나 다를까 그믐날 저녁 중공군이 덮쳐 오니까 우리보다도 먼저 줄행랑을 쳤어요. 보고할 때는 믿지도 않던 놈들이 중공군이 덮치니까 정찰나간 우리가 돌아오기도 전에 먼저 도망을 친 겁니다.

우리는 전쟁이 나기 전부터 공산당하고 싸우던 사람들 아닙니까? 또 우리가 포천 사람들이니까 일동이나 이동의 지리와 여러 사정을 거울 속처럼 훤하게 알고 있거든요. 그러면 우리가 입수한 정보는 정확한 거니까 믿고 대책을 세워야 하는 것인데 돼먹지 않은 짖을 하다가 기습을 당했으니 한심한 일 이였습니다.

우리는 1대대에서 장비 지원을 받을까 해서 같이 일을 한 것이고 1대대는 우리에게 정보를 얻고 협조를 받으려고 서로 손을 잡았던 것인데 그렇게 되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지금도 괘씸한 것은 1대대에서 우리를 인정해 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먹을 것이 없어서 얻어먹으려고 전쟁터에 나갔던 것이 아니고 갈 곳이 없어서 1대대에 빌붙어 다닌 것도 아니란 말입니다.

처자식 내버려 둔 채 나라 지키겠다고 나섰던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도망갈 리가 없는 것은 분명한 것입니다.
우리가 밤에 근무를 나가니까 차가 왔어요.
3대대 보좌관 하던 박 뭐시기(정보장교 박영식)가 왔어요. 그래서 갔는데 그게 왜 도망입니까?

도망이라고 하면 총 놓고 적군과 싸우지 않겠다고 뺑소니치는 것이 도망입니다.
아니 그때 우리가 공산군이 무서워서 도망을 칩니까?
적군이 나타나면 제일 먼저 쫒아 가는 게 우리 유격대입니다. 지금 김일성이가 다시 처 내려와도 나는 다시 나가 싸울 생각이 있습니다.  그냥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뼛속에 박혀 있는 각오입니다.

32연대로 간 과정을 우리 대원은 모릅니다. 우리대원은 시키는 대로만 했으니까 최종성 대장이 우리를 데리고 도망을 갔는지 김영필 대대장이 거짓말을 해서 데려 갔는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이렇게 추측은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최종성 대장이나 유격대 간부들이 32연대로 가고 싶은 생각은 있었을 것이고, 김영필 대대장이 인솔 장교와 차를 보내서 오라고 하니까 가게 된 것이 아니냐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 근거는 대대장(김영필)이 우리 유격대를 좋아했어요. 나는 최종성 대장하고 형님동생 하면서 가깝게 지냈는데 그 양반(유격대장)이 우리를 부르더니 “김영필 부대대장이 우리(유격대)를 현역으로 만들려고 하는데 유격대원들은 하사 계급을 주고 간부들은 상사계급을 준다고 하는데 네 생각은 어떠냐?”고 해요.

그래서 “우리들은 나라를 위해서 충성을 하자고 싸우는 것이지 그까짓 계급은 필요 없습니다. 우리가 계급을 바라고 싸우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아마도 우리 대원들 모두가 같은 뜻일 줄로 압니다.”하고 대답을 하니까 “옳다! 네 얘기가 옳다! 우리는 유격대로 족하다.”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김영필 대위가 1대대 부대대장으로 있을 때 그런 계획을 세웠다가 32연대로 갔습니다. 그러니까 김영필 대대장은 32연대로 가서도 우리 유격대를 어떻게 해야 갰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를 데려갔을 것입니다.

우리가 따라 갔던지 아니면 스스로 갔던지 간에 잘못된 것은 분명하고 32연대에서 차와 인솔 장교까지 보내서 다른 부대의 병력을 훔쳐 가는 것도 잘못된 것이지요. 그러나 그것이 그렇게까지 사람을 죽이고 해야 하느냐는 겁니다.

만약에 우리 유격대원(민간인)이 아니었고 1대대의 현역 군인들이 32연대로 갔다가 다시 돌아 왔다면 그렇게 책임자를 죽이고 옷을 뺏어서 적진으로 쫒아 내겠습니까? 또 현역들이 그렇게 죽임을 당하고 적진으로 내 쫓겼다면 그들이 어떻게 행동을 했갰습니까?

내가 바라고 싶은 것은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서 안 된다는 것이고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도 이제는 잘못을 뉘우쳐야 합니다.
하늘 아래서 어떻게 이 일을 덮어 둘 수도 없는 것이고 지울 수도 없잖아요.
감춘다고 감추어지는 것도 아니고 덮어 버린다고 그게 덮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32연대 3대대 수색중대 배속당시

화야산에서입니다.
미군하고 같이 수색을 하다가  미군이 우리에게 인계를 하고 내려간 후 우리 유격대가 더 올라가서 전투가 시작 됐습니다.

비행기 지원을 받으며 전투를 하다가 나중에는 수류탄 공격에 육박전까지 하게 됐습니다. 나도 중공군하고 육박전을 했지요.

전투가 뜸해질 때인데 현역 하사가 죽어 가드라고요.
죽었나 하고 건드려 보니까 목숨이 붙어 있는데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잖아요.
병권이(임병권 대원)하고 나하고 이걸 살려줘야지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다고 하면서 끌고 내려와서 의무대에 갖다 놓으니까 금방 죽어 버리더군요.

그걸 연대장이 보고는 “이놈에 새끼들 누가 이걸 끌고 오랬냐?”면서 호통을 치는 겁니다.

우리는 그래도 고맙다는 얘기라도 들을 줄 알았는데 연대장이 야단을 치니까 욕만 먹고 다시 올라갔는데 해가 저서 캄캄하니 부대가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요.

길을 잃고 얼마를 헤매다가 어느 집에 들어가서 잤어요.
하늘에는 비행기가 다니면서 중공군 항복하라고 다니고--- 아침이 돼서 잠을 깨보니 우리가 잔 방에 시체가 다섯이나 잇습디다.

그때는 부대에서 완전히 낙오가 된 겁니다.
부대를 찾아 가려고 사방으로 헤매다가 지처서 “이렇게 고생을 할 바엔 죽어 버리겠다.”고 총을 목에다 대고 방아쇠를 당기려고 하니까 병권이가 보고는 형님 여기서 죽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총을 냅다 뺏고는 여태껏 고생하고 왜 죽느냐고 야단을 처요.

또 광덕리하고 화학산 경계에 수밀리라고 있는데 거기서는 중공군에게 우리가 포위되고 또 중공군이 우리 아군에게 포위가 됐습니다.

이틀 동안 찐쌀(대만미)을 먹고 일주일 정도는 비행기로 보급을 날라다 먹었는데 거기서 수색 정찰을 나갔습니다.
그 지역은 민간인도 없는 지역인데 민가에서 소리가 나요. 그래서 봇도랑으로 가니까 중공군이 마늘을 씻어요.

냅다 들이치니까 두 놈이 손을 드는데 혼자 어쩔 수가 없어서 뒤에 오든 병권이를 불러서 두 놈을 잡고는 민가로 가니까 세 놈이 총 소제를 하고 있어요.
몽땅 다섯 놈을 잡아서 병권이하고 정보과에 갔다 줬지요. 우리는 잡아서 갖다 주면 그만이지 이렇고 저렇고도 없었어요.
우리들이 갖다 주면 전과야 현역들 앞으로 올라갔겠지요. 확인 할 수야 없지만 그 길 말고는 없잖아요. 우리한데 돌아 온 것도 없고 전과를 그냥 내버리지는 않았을 것 아닙니까?

373고지는 말입니다.
우리 유격대는 원래가 적진에 들어가 수색 정찰을 하는 것이 임무였습니다.
그런데 373고지가 크지도 않으니까 “너희들이 한번 해봐라!” 하고 연대장이 명령 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수색중대하고 우리가 명을 받았는데--- 사실 373고지 명을 받고 우리 유격대에서는 그날 저녁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다른 고지보다도 373고지는 올라가기가 어려운 고지였거든요. 어떻게 생각하면 공격이 아니고 그냥 죽으러 가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거든요.

우리가 새벽에 나가서 작전을 했는데 임철원이가 우리 분대장이고 이강록이도 무슨 책임을 맡았습니다. 임철원이가 제일 앞에 올라가다가 앞에 뭐가 걸리니까 옆으로 돌고 내가 뒤를 따르다가 제일 앞에 나서게 됐어요. 적이 있는 곳과는 불과  20M정도에서 나도 모르게 내 몸이 거꾸로 처박혔습니다. 바로 내 철모위에서 수류탄이 터진 거예요. 그래서 나는 눈을 부상당해서 내려 왔습니다.

그 다음은 내가 보지는 못했지만 다른 사람 얘기를 들어보면 이강록이가 내 동생이 되니까 자기 형이 제일 먼저 부상을 당해서 내려가니까 이놈이 불끈 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그냥 앞으로 치닫다가 총에 맞아 죽은 겁니다.
내가 부상 당하고 불과 10분도 안돼서 강록이가 죽은 겁니다. 강록이는 서울서 대학을 다니다가 6.25가 났는데 저도 유격대 한다고 지원했다가 죽었지요.
나는 부상당해서 정신이 없는데 이봉학씨가 오더니 죽으면 안 된다고 웁니다. 후송됐다가 3개월만에 퇴원 했습니다.
211.196.25.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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