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 유격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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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이 규 화 (310701-xxxxxxx)
· 작성자 독수리유격대  
· 글정보 Hit : 2822 , Vote : 606 , Date : 2005/09/18 03:17:16 , (5304)
· 가장 많이본글 : PARK, YOUNG SIK (박영식)  

성   명 : 이  규  화  (310701-xxxxxxx)
주   소 : 수원시 세류동 950-57
직   위 : 독수리유격대 소대장 독수리유격대 기념사업회 감사


유격대 창설과정

나의 본 고향은 포천군 어룡리 입니다.  6.25가 일어날 때는 내가 철원 고급중학교를 졸업하고 철원군 전기회사에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전쟁이 터지고 인민군에 영장이 나왔지만 마침 전염병인 옴에 걸려서 인민군에는 안 가게 되였습니다. 그 후 국군이 진격(9.28수복)을 하게 되었고 철원 고급중학교 2년 선배인 고관도씨가 고향에 돌아와서 유격대장을 했습니다. 그 때 고관도씨는 “국방부 학생 유격대 북 강원도 유격대장”이라는 신분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950년 10-11월경이었는데 17연대 본부가 연천에 주둔했고 1대대는 철원에 주둔했습니다. 철원은 패잔병이나 빨갱이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에 고관도씨가 이끄는 학생 유격대는 패잔병들을 소탕했습니다.
철원에 거주하고 있던 젊은 사람들이 주동이 돼서 조직한 유격대는 17연대 1대대와 같이 작전을 했는데 낮에는 아군 1대대가 철원 시내를 점령했고 야간에는 공산군이 판을 처 밤과 낯으로 주인이 바뀌는 상태가 계속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17연대가 다시 가평군 북면으로 후퇴를 하게 되니까 유격대는 해체가 되었고 고관도 대장과 나는 1대대에서 같이 가자고 권유해서 1대대에 배속되었습니다. 1대대는 북면에서 10-15일 정도 주둔하다가 다시 일동면 화대리로 이동을 하게 되었고 민간인 신분이였던 우리는 독수리유격대가 다시 1대대와 손잡게 되자 독수리유격대에 합류했습니다.

철원에서 유격대장을 하던 고관도씨는 독수리유격대에서 교육관이라는 참모직을 맡았고 나는 처음 향도직을 맡았다가 충주에서 최종성 대장과 간부들이 희생된 후 2소대장을 했습니다.

왜 유격대를 했느냐고 묻는다면 우리 유격대원들 중에서도 여러 가지 대답이 있을 줄 압니다. 그러나 당시에 나로서는 국가와 민족을 위하고 목숨을 바쳐서 애국을 해야 하며 내가 아니면 누가 이 나라를 지키겠냐는 절대적인 주장과 논리로서 유격대를 들어갔고 유격대를 끝까지 지켰던 것은 아닙니다.

공산주의 보다는 민주주의를 채택한 대한민국을 더 마음에 두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이 나서는데 나도 나서야 되지 않겠느냐는 평범한 양심과 평범한 용기로 유격대에 동참하게 된 것입니다.

내가 제천 경찰서에 파견을 나가 있을 때 경찰서장이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너희들은 신분 보장도 되지 않는 유격대에 따라 다녀 봤자 별 볼일 없는 것이고 죽어도 명분 없이 개죽음을 하는 것이니까 북진 하지 말고 경찰서에 남아 있어라”는 겁니다.

그러면 자기가 정식 경찰관으로 만들어 주고 앞날도 책임져 준다는 겁니다.
사실 전쟁터에서 벗어나는 것은 누구나의 소원이기도 했지만 나 혼자서 동료를 저버리고 안일을 택할 수가 없더군요.

서장의 권유를 뿌리치고 1대대에 복귀해서 다른 대원과 함께 북진을 했습니다.

내가 아니면 누가 싸우느냐는 영웅심은 아니었다 해도 모두가 같이 싸우는데 내 힘도 보탬이 되어야 한다는 작은 참여 바로 그것이 나의 솔직한 생각이었고 국민 된 자로서의 애국이었다고 믿습니다.

40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내가 지녔던 생각과 내가 취했던 행동은 자랑스러운 것이었다고 믿어집니다.

군인이 훈장을 받기 위해 전장에 나서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훌륭하게 싸운 군인에게는 훈장이 주어집니다.
우리 유격대는 군번도 계급도 없이 열심히 싸웠습니다.
훈장을 받은 군인처럼 그렇게 열심히 전쟁을 했습니다.
훈장을 받으려고 싸웠던 것도 아니고 세상에 내세우기 위해서도 아니기 때문에 4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알아주는 이 없다고 섭섭해 한 적도 없고 스스로 내세워 자랑한 적도 없습니다.
이제야 “옛날에 우리는 이렇게 싸웠다”고 처음으로 밝히는 것입니다.

전장에서 산화한 독수리유격대원들! 그들은 이제 한 점에 흔적도 남김이 없습니다.
육신은 흙이 되어 푸른 숲을 키우고 그들의 정신은 별이 되어 높은 곳에 빛나기를 바랄 뿐입니다.

보병 제 17연대 1대대 배속 당시

우리 독수리유격대와 17연대 1대대와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지역 향토방위를 목적으로 창설됐던 독수리유격대가 17연대 1대대와 합동함으로서 활동 범위가 포천  지방뿐 아니라 전국적인 활동 범위를 갖게 됨으로서 국가 방위에 좀더 적극적인 참여를 하게 된 것이고

둘째는 어떤 연유였던 간에 유격대 간부 5명이 희생되었고 국가를 지키려고 나섰던 사람들이 대한민국 국군에 의하여 적진으로 추방되는 잔혹 행위를 당했다는 것입니다.

내가 독수리유격대에 가담하기 전에 연천에서 고관도씨가 대장을 하던 학생유격대 활동을 했던 것은 창설편에서 밝혔습니다. 그 당시에도 우리 유격대를 지원해 주고 나중에 배속 시켰던 것이 김영필 대위였습니다. 그러니까 유격대와 관계를 맺고 관심을 가졌던 사람은 대대장인 유창훈 소령이 아니라 김영필 대위가 주관한 것입니다.

32연대로 갈 때에 간부들이 과연 몰랐겠느냐? 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납득하기가 어렵습니다. 간부들이 32연대로 갈 의사가 전혀 없는데 김영필이 보낸 인솔 장교에 의해서 강제로 끌려간 것은 아니었거든요.

확인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내가 추측할 수 있는 생각은 전기한 바와 같이 김영필 대위가 우리 유격대를 잘 도와주던 사람이었는데 32연대로 가 버리니까 유격대 간부들로서는 17연대에서 지원도 해 주지 않고 현역과 차별대우를 하는 1대대(유창훈 소령)측에 대한 불만도 생겼을 것입니다.

그러던 중에 김영필 대위 측에서 인솔 장교가 차량까지 가지고 와서 32연대로 가자고 했으면 정당한 것은 아니더라도 응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렇게 해서 갔건 저렇게 해서 갔건 간에 남의 부대 병력을 빼 간 사람도 잘못이고 이유야 어찌됐던 소속부대의 연락도 없이 인솔 장교를 따라간 우리(유격대)도 잘못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쟁을 포기하고 줄행랑을 친 것이거나 아군에게 피해를 주기 위해서 이적 행위를 한 것이라면 엄격한 처벌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잖아요.

도망이 아니라 좀더 소신껏 전쟁을 하자고 했던 일이고 이동방법은 정당치 않았다 해도 독수리유격대의 정신이 어떻다는 것은 17연대(1대대)에서도 충분히 알고 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스스로 돌아온 사람들을 죽이고 발가벗겨서 적진으로 내 쫓아야만 했느냐는 것입니다.

17연대 1대대 측에서는 잘못된 일을 바로잡기 위해서 우리 유격대를 되돌아오게 한 것이 아니라 죽여 버리고 쫓아 버리기 위하여 독수리유격대를 되돌려 받았다는 감정도 나옵니다.
32연대와 17연대는 그렇다 치고 2사단 헌병대에서는 지휘계통과 명령에 의해서 유격대원의 신변을 32연대에서 인수받고 17연대에 인계했을 텐데 그들이 5명이나 총살을 당하고 58명이 추방되는 사실을 과연 몰랐겠느냐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우리 민간인 신분의 유격대가 아니었고 현역 군인들이 우리와 똑같은 연유로 이동 했다가 되돌아 왔다면 그렇게 처형되고 추방 됐겠느냐는 것입니다. 절대로 그런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 유격대가 민간인이었기 때문에 처형을 했고 추방을 했던 것입니다.
누구를 탓하고 나무라자는 것이 아닙니다.
민간인이었기 때문에 처형을 당하고 추방당했던 사실이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민간인이라고 해서 함부로 처형하고 추방해 버린 사실을 당자들과 함께 오늘의 군 당국도 반성을 해야 합니다.

32연대 3대대 및 수색 중대 배속 당시

우리 유격대는 수색 정찰을 주 임무로 해서 활동을 했습니다.
주로 경상도 지방에서 공비 토벌을 했는데 그것이 1951년 3-4월경입니다. 태백산 소백산 지역에서 토벌 작전을 하느라고 단양 의성 의흥 청송 안동 제천 신녕 등지를 다녔습니다.
나중에는 3-4명씩 파견을 나갔는데 고복동대원하고 나를 제천 경찰서장이 붙잡는 데도 그것을 뿌리치고 32연대로 복귀해서 동료와 같이 북진을 했습니다.

양평에서부터 전투 임무를 수행 하면서 북진을 했는데 청평 발전소가 후퇴하는 적으로부터 폭파되지 않도록 적군을 유인 공격하라는 명을 우리 유격대가 맡았습니다.

발전소가 폭파되지 않은 채 화야산 공격이 끝나고 현리를 지나 상판리 하판리에서 중공군 2명을 잡고 그놈들한테서 권총 한 자루를 뺏어서 내가 차고 다녔습니다.
옛날 마적단이 차고 다니든 자루가 기다란 권총이었는데  나중에는 정보과에서 중요한 증거가 된다고 하기에 반납을 했습니다.

우리가 포로를 잡거나 노획한 장비는 많지만 정보과에 후송시키는 것으로 끝나 버렸고 우리에게는 보상이나 상훈이 일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묻혀 버렸을 리는 없고 적당한 선에서 현역들의 몫으로 처리 되였을 것입니다.

우리가 기대를 한 것은 아니지만 사실 섭섭한 점은 많았습니다.

내가 373고지에서 부상을 당하고 서울 육군병원에 후송이 되니까 민간인 신분이라고 을지로의 무슨 시립 병원으로 쫓겨났습니다.

시설도 억망이고 약도 없어서 내가 스스로 약도 구해 바르고 치료를 했습니다.

완쾌된 후에 육군병원에서 군속으로 일을 하고 있는데 다시 영장이 나와서 재 입대를 하고 30개월의 군 복무를 했습니다.
32연대에서 전투 중 부상을 당하고 육군병원까지 후송을 했는데도 근거 할만한 서류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한 두 사람도 아니고 60여명이 각종 전투에 참전을 했는데 그 명단마저 챙겨 놓지 않은 것도 잘못된 것이고 미루어 생각하면 제천 경찰서장 말대로 별 볼일 없고 죽어도 개죽음으로 처리 되는 것이 우리의 실상이고 현역 지휘관들의 인식이였는지 모릅니다.

상판리 하판리를 지나 국망봉 광덕산 사창리 금화쪽으로 진격을 하면서 373고지에서 내가부상으로 후송이 됐습니다.

373고지는 별로 높지 않은 고지였는데 연대장의 명을 받아 수색중대와 연대본부 요원만으로 작전에 들어갔습니다.

내가 이끄는 유격대 2소대는 옆으로 우회를 해서 진격을 했고 다른 소대와 현역들은 정면 공격을 했습니다.

그곳에 지형이 엄폐나 음폐를 할 나무나 구릉이 없고 평평한 능선인데다가 적은 요상하게 생긴 바위를 근거지로 해서 방어를 하기 때문에 아군 측에서는 공격하기가 상당히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아침 6시부터 공격이 시작 됐는데 능선 8부쯤 되는 곳에 바위가 있고 중공군이 방어를 하기 때문에 우리는 정면과 측면에서 모두 공격을 못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궁리 끝에 소대장인 내가 앞장을 서고 7명의 특공조를 편성해서 공격을 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특공조가 8부 능선의 바위를 점령해서 올라서자마자 정상부에 있던 적으로부터 집중사격을 받아 7명이 전부 부상 하거나 전사를 했습니다. 한상준이는 머리에 송완희는 배를 맞아 전사했고 정동진이도 그 자리에서 즉사를 했습니다. 내가 연대 의무대에 후송되어 있는 중에도 계속 부상자가 내려 왔는데 그들 얘기는 작전에 어려움이 많다는 얘기였습니다.

우선 연대 요원들만 가지고 작전을 하니까 전투경험이 없거나 비 전투 행정요원들이 자꾸 뒤로 빠지는 바람에 연대장까지 직접 나서서 독전을 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373고지가 얼마나 중요 했는지는 몰라도 꼭 점령을 해야 할 고지라면 연대 병력이 아니고 충분한 병력을 지원 받았어야 했으며 지형상으로 보아도 보병 주축의 공격을 할 것이 아니라 중화기를 충분히 보충하든가 지원 받아서 했어야 했는데 당시의 지휘관들이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고 너무 조급하게 전과(점령)만을 올리려는 욕심도 있었던 것으로 생각 합니다.

어쨎던 무리한 작전으로 아군의 피해가 극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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