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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유격대 전적비   
독수리 유격대 전적비

위 치 : 포천군 이동면 낭유리 산146번지
규 격 : 8.2 미터(화강암)
제 막 : 1991년 7월 30일(1989년 7월 착공- 1991년 6월 완공)
건립주관 : 포천 문화원
기금조달 : 국방부. 재향군인회. 포천군. 유격대 기념사업회.
                 유격대 전몰유족회.
시공지원 : 보병 제3070부대
전사고증 :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 전사실

비 문(전면)

독수리 유격대는 자유 민주주의를 수호하려는 포천지역의 반공 애국청년 63명이 1950년 11월 포천군 신읍에서 조직되어 국군 제 2사단 17연대 및 32연대와 합류하여 경북 의성, 청송, 안동, 예천, 풍기 지역과 충북 제천, 단양지역에서 인민군 제 10사단과 공비들을 토벌하고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전투와 현리, 광덕산, 천불산, 734고지, 373고지 및 금화지구 전투에 참전하여 일사호국의 정신으로 혁혁한 공을 세웠고 이중 16명이 전사하였다.

본 유격대는 민간인 신분으로 자생 조직되었으나 투철한 애국정신과 구국 신념으로 참전하였기에 그 용맹함이 뛰어났고 전과 또한 컸지만 자신들의 신분이나 전공에 따르는 상훈에는 초연하였기에 국가에서도 이를 기억하지 못 한 채 여태까지 전몰대원들의 혼령마저도 안치시키지 못하고 39년간을 잊혀져 오다가 1989년 6월 국방부 당국에 의하여 독수리 유격대의 장한 애국지성과 그 명예로웠던 전적을 확인 받게 되었다.

스스로의 사명감이 강했기에 앞장서 국가와 민족을 지켰으며 임무를 다 하고서는 묵묵히 가슴에 묻은 채 오늘에 이르렀으니 이들의 고귀한 뜻을 역사의 기록으로 남겨 후대의 귀감이 되게 하고자 국방부장관, 재향군인회장, 포천군수, 육군 제 3070부대장의 후원과 생존대원 및 전몰대원의 유족들이 합심협력 정성을 모으고 포천문화원이 이를 주선하여 여기 관음산 기슭에 이 비를 세운다.

최 면 택 글, 김 진 동 씀
서기1 9 9 1 년 6 월 6 일


헌 시(후면)

호 국 성

부르지도 않았는데
조국앞에 모이고 뭉쳐

이 겨래 이강토 지켜낸
장한 임들이여

해와 달이 되어
이 나라 살피시고

산천초목 되어
이강토 감싸소서

최면택 지음  김진동 글씨

전적비 위치

독수리유격대는 우리 포천 출신의 반공 청년들을 주축으로 하여 조직되였고 일동 이동 산내지를 련결하며 향토방위와 공산군의 토벌작전을 폈으며 낭유리(浪踰里) 토벌작전에서 최영찬(崔英贊) 대원이 최초로 전사를 하게 되였다.
일월산에서 팔공산에 이르는 태백산지구의 대대적인 토벌작전을 끝낸후 운악산. 국망봉. 광덕산. 대성산을 거처 금화지구까지 북진을 하였으므로 앞으로 펼쳐진 벌판과 강줄기 산줄기마다 독수리유격대의 기혼(氣魂)이 서리고 함성이 배인 곳이다.
조국의 수호를 위하여 치닫던 산야를 조망하며 이곳 낭유리 뒤편에 비를 세웠다.

전적비의 상징

태극괘(太劇卦)는 국가상징(太極旗, 大韓民國)과 함께 독수리유격대의 숭고한 애국정신과 장한 공훈이 천지일월(天地日月)처럼 영원불멸의 상징으로 남기려는 뜻을 담았다.

상단(上段)의 금강석(다이아몬드)문양은 양편을 합하여 16면으로 조합 하였고 이는 16인의 전몰대원을 상징했으며 이들의 정신과 명예가 금강석처럼 귀하고 빛나기를 기원하였다.

단석(壇石)은 머리를 접어 가옥(家屋)을 형상화 했고 이는 인간생활의 근원(根源)을 뜻하며 우리들의 절대 안정과 평화, 그리고 40년을 두고 방황했던 전몰대원들의 고혼(孤魂)이 여기에 안주(安住) 하기를 기원했다.

비신(碑身)은 각(角)을 주어 높은 곳을 향 하도록 구성하고 위에 독수리상은 독수리 유격대의 조국수호 정신과 신념을 넓게 펴고자 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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